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 치료자를 만나야 된다. 친구도 좋고 배우자도 좋고 정신과 의사도 좋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내 가치를 인정해주는 자기 대상'을 만나서 친밀함을 나누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숨는 자(hider)'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자(seeker)'가 되어야 한다.- 이무석의《친밀함》중에서 - * 한 번의 경험이 또 다른 경험으로 발전되고,한 번의 친밀한 경험이 더 좋은 친밀함으로 이어집니다.그리고 마침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치료자'가 되는 깊은 경험에 이르게 됩니다. 평생에 그런 치료자 한 사람 만나는 것도 큰 행운입니다. 그러나 그 행운도 거저 얻는 것이 아닙니다.'숨는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찾아 나서는 자'가 되어야비로소 가능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2007년 12월 15일 토요일
2007년 12월 14일 금요일
에니오 모리꼬네를 박대하는 사람들...
에니오 모리꼬네가 한국에 왔을때 연주일정을 취소하고 몇일도 안있다가 바로 가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에니오 모리꼬네가 한국에 온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그런 거장이 우리나라같은데를 다 오다니 평생 한번도 안가봤지만 에니오 모리꼬네가 온다는데 이참에 나도 음악 공연회나 한번 가볼까하고 생각했었던 바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의 한국에서의 공연은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길지도 않은 한국에서의 일정이 단 며칠로 단축되어 왔다가 바로 간셈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이유는 너무나 우습게도, 에니오 모리꼬네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지도 못했고 - 당연히 그는 얼굴이 잘 알려진 아이돌 스타는 아니다, 그저 영화음악계의 세계적 거장이었을 뿐이다 -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그를 알아보지를 못하여 그를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몇시간을 서서 기다리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나이도 많은 노인네인데, 당연히 그는 내심 불같이 화가 났을것이지만 별 얘기도 하지 못하고 한국에 대한 안좋은 인상과 극심한 불쾌감만 안고 고국으로 돌아갔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예절과 매너없음은 내가 나의 모교에서 있었던 노벨상 수상자들의 세미나에 참석했을때도 눈에 띄었고, 아마 단상위에 있었던 노벨상 수상자였다면, 어린학생애들의 말이 들리는 위치였다면 대단히 기분이 상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기본적으로 '어른'에 대한 예절이 너무 없다.
에니오 모리꼬네나 노벨상 수상자나 물론 나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사람들 - 자잘한데서 목메고 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닌 큰 사람들 - 에대한 기본적 예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절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와 다른 사람들, 그들이 나와 어떻게 다른가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며 존경한다면, 타인을 존중하는 삶이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살려준다는것을 깨달을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에니오 모리꼬네가 한국에 온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그런 거장이 우리나라같은데를 다 오다니 평생 한번도 안가봤지만 에니오 모리꼬네가 온다는데 이참에 나도 음악 공연회나 한번 가볼까하고 생각했었던 바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의 한국에서의 공연은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길지도 않은 한국에서의 일정이 단 며칠로 단축되어 왔다가 바로 간셈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이유는 너무나 우습게도, 에니오 모리꼬네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지도 못했고 - 당연히 그는 얼굴이 잘 알려진 아이돌 스타는 아니다, 그저 영화음악계의 세계적 거장이었을 뿐이다 -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그를 알아보지를 못하여 그를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몇시간을 서서 기다리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나이도 많은 노인네인데, 당연히 그는 내심 불같이 화가 났을것이지만 별 얘기도 하지 못하고 한국에 대한 안좋은 인상과 극심한 불쾌감만 안고 고국으로 돌아갔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예절과 매너없음은 내가 나의 모교에서 있었던 노벨상 수상자들의 세미나에 참석했을때도 눈에 띄었고, 아마 단상위에 있었던 노벨상 수상자였다면, 어린학생애들의 말이 들리는 위치였다면 대단히 기분이 상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기본적으로 '어른'에 대한 예절이 너무 없다.
에니오 모리꼬네나 노벨상 수상자나 물론 나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사람들 - 자잘한데서 목메고 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닌 큰 사람들 - 에대한 기본적 예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절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와 다른 사람들, 그들이 나와 어떻게 다른가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며 존경한다면, 타인을 존중하는 삶이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살려준다는것을 깨달을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Globalization 에 대한 단상...
이글은 원래 덧글로 쓰여진 글이나, 한번 생각해볼만한 주제라고 생각되어 제 사이트에 원글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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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분들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해 대단히 환상들을 품고계시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듭니다. 저도 글을 쓴후에 제가쓴 글이 국수주의적으로 해석되지나 않을까 걱정했읍니다만 염려한바가 바로 나타났군요 ^^;
저도 북미에서 살아봐서 알지만 한국사람이 외국에서 태어난다고 그사람을 - 심지어 원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 그나라사람으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제말은 법적으로 그나라 사람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보지만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인종적인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문제 이외에도, 글로벌라이즈 되어서 전세계가 비슷비슷해지는것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요? 저는 지나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중에 하나로써,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있으면 동시에 로컬라이제이션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의 뿌리를 인식못하고 진행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타인에 의해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부유하게 만드는 위험한 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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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분들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해 대단히 환상들을 품고계시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듭니다. 저도 글을 쓴후에 제가쓴 글이 국수주의적으로 해석되지나 않을까 걱정했읍니다만 염려한바가 바로 나타났군요 ^^;
저도 북미에서 살아봐서 알지만 한국사람이 외국에서 태어난다고 그사람을 - 심지어 원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 그나라사람으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제말은 법적으로 그나라 사람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보지만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인종적인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문제 이외에도, 글로벌라이즈 되어서 전세계가 비슷비슷해지는것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요? 저는 지나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중에 하나로써,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있으면 동시에 로컬라이제이션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의 뿌리를 인식못하고 진행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타인에 의해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부유하게 만드는 위험한 덫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10월 31일 수요일
실망을 주는 사람들...
사는게 바쁘다 보니 모든걸 건성건성 대충 넘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나의 태도도 남보기에 눈쌀을 찌푸리게 할만한 데가 있지 않았나 걱정을 하게 만든건 오늘 누군가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이다.
그 복덕방 아저씨의 태도.... 일단 내게 전화를 주기로 해놓고 전화를 안한것 - 별로 바빠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이단 내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결정에 도움을 줄만한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지 않고 결정을 내린후에나 얘기를 한것, 삼단 전반적으로 시작이 안좋으니 대화내내 불쾌했다는것...
처음에 전화를 주기로 했는데 주지 않은것은 대단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고객은 나이고 고객에게 기본적인 친절은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그리고 얘기를 자기가 알아보고 또 아는만큼 얘기를 해야 내가 그만큼 선택을 더 잘할수 있을것 아닌가. 그 아저씨가 이야기를 해주므로써 나는 그 아저씨한테 더 유리한 선택을 할수 있었을텐데도 그렇게 하질 않았다는것은 기본적인 불성실과 태도 불량이라고 밖에는 보여지질 않는다.
초반인상이 중요한것이 시작을 그렇게 하니 전화를 하는 내내 기분이 좋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아저씨는 내가 그 아저씨를 선택할수 밖에 없다고 여기는것 같았는데 사실 다른 복덕방에 말하므로써 들일 시간과 고생을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복닥방에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실 시간만 좀 약간만 더 주어진다면 그런 아저씨는 그렇게 해서라도 응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그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시간에 쫒긴답시고 이런 지나친, 치명적인 실수를 더더군다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태도불량... 그것은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행여나라도 갖고 있는 오만정을 다 떨어뜨리고 관계를 악화시키는 확실한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그 복덕방 아저씨의 태도.... 일단 내게 전화를 주기로 해놓고 전화를 안한것 - 별로 바빠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이단 내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결정에 도움을 줄만한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지 않고 결정을 내린후에나 얘기를 한것, 삼단 전반적으로 시작이 안좋으니 대화내내 불쾌했다는것...
처음에 전화를 주기로 했는데 주지 않은것은 대단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고객은 나이고 고객에게 기본적인 친절은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그리고 얘기를 자기가 알아보고 또 아는만큼 얘기를 해야 내가 그만큼 선택을 더 잘할수 있을것 아닌가. 그 아저씨가 이야기를 해주므로써 나는 그 아저씨한테 더 유리한 선택을 할수 있었을텐데도 그렇게 하질 않았다는것은 기본적인 불성실과 태도 불량이라고 밖에는 보여지질 않는다.
초반인상이 중요한것이 시작을 그렇게 하니 전화를 하는 내내 기분이 좋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아저씨는 내가 그 아저씨를 선택할수 밖에 없다고 여기는것 같았는데 사실 다른 복덕방에 말하므로써 들일 시간과 고생을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복닥방에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실 시간만 좀 약간만 더 주어진다면 그런 아저씨는 그렇게 해서라도 응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그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시간에 쫒긴답시고 이런 지나친, 치명적인 실수를 더더군다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태도불량... 그것은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행여나라도 갖고 있는 오만정을 다 떨어뜨리고 관계를 악화시키는 확실한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2007년 10월 16일 화요일
저의 블로그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지금 때마침 한계는 장점이 될수도 있다고 라디오에서 나오는군요.
뭔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멘트입니다.
이럴때 한계는 좌절을 느끼게 하는 한계가 아니라 한 인간을 정의하는, 즉 한인간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의미가 될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한계가 가져다주는 부정성에 집착하지 말고 한계의 다른 측면을 생각해보는 삶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요?
뭔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멘트입니다.
이럴때 한계는 좌절을 느끼게 하는 한계가 아니라 한 인간을 정의하는, 즉 한인간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의미가 될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한계가 가져다주는 부정성에 집착하지 말고 한계의 다른 측면을 생각해보는 삶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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